일본 1만엔 신권 초상 모델이 의미하는 시대정신

2024년 7월부터 일본 1만엔 초상 모델이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재계 인물로 변경되어, 새로운 신권을 발행합니다. 신권에 등장하는 모델은 한국으로 치면 이병철, 정주영 회장이 등장하는 것인데, 일본은 굳이 재계 인물을 초상 모델로 삼은 것일까요?


일본 1만엔 신권 발행

일본 지폐의 가장 큰 단위는 1만엔으로 오는 7월부터 새로 발행하는 1만엔권에는 시부사와 에이이치(1840~1931)라는 재계 인물이 등장합니다. 일본 요식업계에선 메뉴 주문을 자판기로 하는 가계가 대부분인데, 신권용 자판기를 새로 들여야 한다는 부담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1만엔권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58년입니다. 당시에는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의 건설 경기가 붐을 이루던 시절로, 일본 경제도 본격적인 상승세에 돌입하였는데, 1만엔권 모델에는 ‘쇼토쿠 태자’가 등장하였습니다.

‘쇼토쿠 태자’는 일본에 불교를 보급하고, 관료제의 기초를 세워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한 인물로, 고구려 승려 담징이 벽화를 그린 것으로 유명한 호류사를 창건한 것도 쇼토쿠 태자입니다.

일본 재건의 상징인 도쿄 올림픽과 국가의 체계를 갖춘 쇼토쿠 태자, 시대적인 연결성을 갖고 있기에 첫 1만엔권에는 쇼토쿠 태자가 등장한 것입니다.


후쿠자와 유키치

두 번째로 1984년에 등장한 새로운 1만엔권에는 게이오대학을 설립한 교육자인 후쿠자와 유키치가 선정되었으며, 그는 ‘학문을 권함’을 저술한 사상가로도 유명합니다. 그렇다고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그가 선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아시아를 떠나 서양 문명 국가에 합류하라’라는 탈아론(脫亞論)을 주장하였던 인물로, 1980년대 일본 경제는 아시아에 포함되기에는 너무 커져 있었습니다. 1972년 미국에 이어 국내총생산(GDP) 세계 2위에 오른 이후 2009년 중국에 자리를 넘기기 전까지 명실상부한 세계 이인자였습니다.

1984년 1만엔권에 후쿠자와 유키치가 등장한 것은 일본이 스스로 ‘탈아(脫亞)’를 선언했다고 볼 수 있는데, 당시엔 후쿠자와 유키치가 일본의 시대정신(시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절대적인 정신﹒Zeitgeist)으로 제격이었다는 것입니다.

일본 1만엔 신권 모델 시부사와 에이이치 모습


시부사와 에이이치

2024년 7월 새로운 신권에 등장하는 모델이 바뀌었다는 것은 시대정신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시부사와는 ‘논어와 주판’을 강조하였는데, 한 손에는 주판을 들고 돈을 많이 벌되, 다른 손에는 ‘논어’를 들고 항상 윤리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는 ‘깨끗하게 번 돈이라면 하나도 부끄러울 게 없다’라는 ‘논어’의 구절을 자주 인용했었는데, 기업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노벨평화상 후보에도 두 번이나 오르기도 했었습니다.

피터 드러커는 시부사와를 ‘경영자의 핵심은 부(wealth)도 아니고, 지위(rank)도 아닌 책임감(responsibility)인데, 이를 가장 먼저 깨우친 인물’로 평가할 정도입니다.

줄리아나 도쿄

1990년대 이후 부동산 버블과 함께 ‘잃어버린 30년’을 맞이하기 전까지 일본 경제는 초호황을 누렸는데, 1991년에 문을 열고, 1994년에 폐업한 ‘줄리아나 도쿄’는 한꺼번에 2,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던 전설의 디스코 클럽이었지만, 일본 경기의 끝자락을 상징하고 있을 뿐입니다.

30년간의 경제 침체를 겪은 일본은 ‘탈(脫)아시아’란 이념보다는 ‘깨끗한 부의 중시’라는 실용을 시대정신으로 삼은 것입니다. 그리고 시부사와는 85세 때 18세 여성이 그의 아들을 낳았는데, 일본은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보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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