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관심은 무지를 낳습니다. 퇴직연금 시장이 급부상하고 있지만, 여전히 제대로 이해하는 가입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또한 관심이 없다 보니 관련 용어나 개념도 모르는 일이 허다하고, 계속해서 어렵고 귀찮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기회를 보기 위해 이제는 시작해야 합니다.

퇴직연금 운용 가이드
2024년 10월 31일 퇴직연금 실물 이전이 시작됐습니다. 실물 이전은 은행, 증권사, 보험사 등의 퇴직연금 가입자가 상품을 매도하지 않고, 그대로 다른 금융 회사 계좌로 옮길 수 있는 제도로, 예금 상품 보유자라면 중도해지 없이 약정 이율을 받을 수 있고, 손실을 보고 있는 투자 상품도 이전을 위해 굳이 매도할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동시에 약 400조 원 규모의 퇴직연금 시장을 놓고 은행・보험・증권 업계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는데, 가입자들의 고민도 늘었습니다. 어떤 퇴직연금사업자가 본인에게 적합하고, 더 큰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지 꼼꼼히 따져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연금 시장을 어렵고 귀찮게 여겼던 분이 많지만, 모든 투자가 그렇듯, 난해하게만 여겨졌던 제도의 구조와 원리, 더 나아가 전망까지 공부하면 새로운 기회가 보이며, 그 시작은 역시 기초 개념을 아는 것입니다.
실물 이전
우선 본인이 다니는 회사가 퇴직연금을 도입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업은 근로자에게 퇴직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기존처럼 퇴직금 제도를 유지하거나, 이를 퇴직연금 제도로 전환해 대체할 수 있습니다.
퇴직연금을 도입한 기업은 퇴직연금사업자를 복수로 지정해 운영할 수 있는데, 퇴직연금을 도입하면 기업은 부담금을 자체적으로 쌓아 두는 대신 퇴직연금사업자에 예치합니다.
그리고 퇴직연금은 회사가 퇴직자에게 줄 돈을 미리 정해 놓고 운용 책임을 지는 확정급여(DB)형, 회사는 적립금을 넣어주기만 하고 근로자가 상품을 운용하는 확정기여(DC)형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직하거나 퇴사할 때 받은 퇴직금을 개인 계좌에 적립해 운용하는 개인형퇴직연금(IRP)도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실물 이전은 회사에서 미리 선정해 놓은 퇴직연금 사업자 중에서 가능한데, 절차는 새로 계좌를 이동하는 금융사에 퇴직연금 계좌를 개설한 뒤 이전 신청서만 접수하면 됩니다. 다만, 실물 이전은 같은 제도끼리만 가능한데, DC형은 DC형끼리, IRP는 IRP 계좌로만 옮길 수 있습니다.
이전 가능 상품
이전 가능한 상품들로는 예금, 정부보증 채권, 회사채 등 채권, 원리금 보장 파생 결합사채, 펀드, 상장지수펀드(ETF) 등이 있으며, 반면 리츠, 디폴트옵션, 파생 결합 증권, 금리연동형 보험은 실물 그대로 계좌 이전이 불가능하므로 본인의 투자 자산 현황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퇴직연금사업자 선택
연금 상품은 종류가 다양하고, 과세 체계가 복잡해 노후 준비를 위해 계획을 세우는 데 어려움이 있기에, 연금에 대한 종합적인 상담이 필요할 때 전문가 상담이 적시에 가능한지, 연금 관리를 유익하고 참고할 만한 정보를 적시에 제공받을 수 있는지, 주거래 혜택(ex 환율 우대, 각종 수수료 면제, 대출 관련, 고객 편의 서비스 등) 등의 제공 범위를 살펴보고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운용사 선정 시에는 수익률보다 포트폴리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노후 대비 자산인 연금 상품은 장기로 유지해 자산을 꾸준하게 불려 가야 하는 만큼, 단기 수익률보다는 장기 수익률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자산 배분 전략
“달걀을 하나의 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투자의 오랜 격언은 예나 지금이나 늘 강조하는데, 포트폴리오의 중요성은 퇴직연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투자 성향이나 연령 등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찾는 과정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포트폴리오 구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전체 자산을 주식과 채권 등 여러 자산으로 어떻게 배분하느냐이지만, 우리나라 연금 가입자들은 자산 배분 전략을 확립하는 재무 설계 과정이 없이 막연하게 채권이나 정기예금 등에 편중해 운용하고 있습니다.
개인 가입자들이 스스로 면밀한 포트폴리오를 수립하기는 쉽지 않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자산 운용 전문가(프라이빗뱅커(PB), 파이낸셜플래너(FP))의 도움을 받는 것이지만, 직접 이들을 찾아가 설문지나 상담을 진행할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전문가들이 자주 언급하는 방법은 ‘핵심-위성 전략(core-satellite)’이 있는데, 핵심 자산이란 코스피 지수, 미국 S&P500지수 등 시장의 평균적인 성과를 실현하는 상품에 투자해 예측할 수 있는 수익을 추구하는 자산을 말합니다.
위성 자산은 글로벌 2차전지, 신재생에너지, 중국 4차 산업 등 시장 평균을 초과하는 고위험・고수익을 추구하는 상품에 투자하는 것으로, 초기 변동성은 높지만, 장기적으로 높은 수익 달성이 예상되는 업종이나 섹터에 투자하는 등 장기 운용 시 전체 포트폴리오 수익률을 높여줄 수 있습니다.
이 방법을 응용해 핵심자산은 타깃데이트펀드(TDF)로 글로벌 자산 배분을 담고, 위성자산은 본인이 생각하는 투자 관점을 더 액티브하게 적용해 투자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디폴트옵션
디폴트옵션(default option)은 ‘사전지정운용제’란 의미로, 가입자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퇴직연금(DC・IRP)이 운용 지시 없이 방치되고 있으면, 회사와 근로자가 사전에 지정한 방법으로 운용되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미국, 영국, 호주 등 퇴직연금 제도가 잘 발달한 영미권 국가가 선제 도입해 퇴직연금의 장기 운용성과 개선에 기여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자산 운용 활성화를 통해 퇴직연금 자산의 고질적인 문제인 낮은 수익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2023년 7월 12일부터 디폴트옵션을 본격 시행했습니다.
디폴트옵션은 무관심이나 전문성 부족 등으로 운용 방법을 정하지 않았거나, 못할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지만, 이상하게 우리나라는 가입 근로자가 직접 디폴트옵션을 선택하게 돼 있으며, 이는 원리금 보장형(예금 등)에 더 많은 자금이 모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디폴트옵션은 기대수익률과 투자 위험에 따라 초저위험, 저위험, 중위험, 고위험 등 네 가지로 나뉘며, 초저위험은 은행 정기예금 등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만 구성되고, 나머지는 정기예금과 TDF, 자산 배분형 펀드 등으로 적절하게 배분, 구성돼 있습니다.
정기예금 상품에 자산은 방치하지 말라는 의도로 디폴트옵션 제도를 도입했지만, 제도 도입 당시 증권사와 은행 및 보험업권 간의 치열한 논란이 있고 난 뒤 결국 원리금 보장 상품으로만 구성된 초저위험 상품이 포함되었습니다.
선택
가입자의 선택을 돕기 위해 퇴직연금사업자는 디폴트옵션의 구성 내용, 수익률 현황, 수수료 등을 공시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선택에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지만, 남은 가입 기간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퇴직까지 기간이 10년 이상 남았고, 중도에 인출할 계획이 없다면 중위험이나 고위험 유형을 선택하거나, 퇴직 혹은 중도 인출 계획까지 5년 이내라면 초저위험이나 저위험 유형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추가로 금융 회사의 디폴트옵션으로 운용을 원하면 언제든지 선택이 가능한데, 이를 ‘옵트인(opt-in)’이라고 하며, 반대로 디폴트옵션으로 운용하다가 언제든지 다른 방법으로 운용 지시를 하는 것을 ‘옵트아웃(opt-out)’이라고 말합니다.
펀드
퇴직연금을 개인이 직접 운용하기 어려워 대개는 투자 전문가에게 맡기는데, 이러한 투자 상품이 바로 펀드(fund)입니다. 펀드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자금을 모아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하고, 그 손익을 다시 투자자에게 돌려주는 금융 상품입니다.
사실 국내 퇴직연금 투자 대부분이 펀드를 통해 이뤄지고 있는데, 이는 퇴직연금 운용의 규제 탓도 있습니다. 기업이 직접 운용하는 DB형은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개별 종목에 투자할 수 있지만, DC형이나 IRP는 개별 주식에 직접 투자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투자 위험이 높기 때문이라지만,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결국 DC형과 IRP 가입자들은 전문가가 운용하는 펀드를 통해 주식이나 채권 등에 투자해야 하는데, 최근에는 연금 운용에 특화된 펀드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으며, 대표적인 예가 ETF, TDF, 디딤펀드입니다.
ETF
ETF는 특정 주가나 상품 지수를 추정하는 일종의 인덱스 펀드로, 거래소에 상장돼 주식처럼 거래되는 상품입니다. 퇴직연금은 2012년부터, 연금저축은 2017년부터 적립금을 ETF에 투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ETF를 투자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 지나치게 변동성이 큰 상품에는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습니다.
최근 ETF를 활용한 퇴직연금 운용이 증가했는데, 연금 투자에 적합한 다양한 ETF 상품들이 등장하고, 일반 펀드보다 저렴한 투자 비용을 배경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일반 펀드는 펀드 추천 및 관리 등에 따른 판매보수가 있지만, ETF는 없습니다. 대신 가입자가 직접 ETF 종목을 골라서 투자해야 합니다.
그리고 ETF는 당일 매수, 매도가 가능해 시장 상황에 따라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는 강점도 있지만, 다양한 스타일의 ETF 분산투자를 통해 시장 위험을 줄이고, 투자 시점에 따른 위험을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TDF
TDF는 타깃데이트펀드(Target Date Fund)의 약자로, 은퇴 예상 시점에 맞춰 펀드 내 주식과 채권 비중을 시간 흐름에 따라 자동으로 조절해 주는 자산배분형펀드로, 초기에는 주식 비중을 높여 공격적으로 투자하다가 은퇴 목표 시점이 다가올수록 채권 비중을 높여 안정성을 추구합니다.
운용사별로 고유의 ‘글라이드패스’라고 불리는 자산 배분 곡선에 따라 자산군의 비중을 조절하는데, 개인 가입자가 TDF를 고를 땐 펀드명 끝에 기재된 ‘2050’, ‘2055’ 등 목표 연도를 확인해, 본인이 예상하는 은퇴 시점에 맞는 펀드를 고르면 되는데, 보통 5년 단위로 돼 있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60세까지 일한다면 본인이 태어난 연도에 60을 더해 가까운 숫자의 TDF를 선택하면 되는데, 만약 1982년생이라면 1982+60=2042이므로 가까운 2040이나 2045에 가입하면 되는 것입니다.
디딤펀드
2024년 9월 연금 운용에 특화된 펀드가 출시되었는데, 바로 ‘디딤펀드’입니다. 디딤펀드는 주식, 채권 등 여러 자산에 분산투자 하는 자산 배분 펀드라는 면에서 TDF와 동일하며, 적립금 전액을 이 펀드에 투자할 수 있다는 점도 같습니다.
다만 차이점은 TDF는 운용 기간 흐름에 따라 위험자산 비중을 줄이는데, 디딤펀드느 위험자산 비중을 비교적 일정한 범위로 유지하면서 시장 상황과 자산 가치 변동에 따라 자산 배분을 조정합니다.
즉, 위험 수준이 운용 기간 동안 ‘이븐(even)하게’ 유지돼야 한다는 것으로, 이렇게 주식, 채권 비중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리밸런싱을 통해 자산 배분을 수행하는 펀드를 ‘밸런스드펀드(balanced fund)’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디딤’이라는 명칭은 25개 자산운용사가 공유하는 공동 브랜드지만, 운용사마다 디딤펀드를 운용하는 방식은 각기 다릅니다. 목표 위험관리에 집중하는 펀드가 있는가 하면, 빅테크 기업 투자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ETF로 하는 자산 배분을 특징으로 내세우는 펀드도 있습니다.
TDF와 디딤펀드 사이에 우열은 없지만, 위험자산 비중을 70~80%에서 시작해 은퇴 시점에는 30~40%대로 자동 조정하고 싶다면 TDF를, 운용 기간 전체를 아울러 위험자산 비중을 50% 이내로 유지하고 싶다면 디딤펀드를 각각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운용 성과 평가 및 리밸런싱
연금 자산 운용은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실행 이후 정기적인 평가와 관리도 매우 중요한데, 연금 운용의 평가는 가입자가 세운 목표를 얼마나 달성하고 있는지, 현재 투자하고 있는 펀드 등의 투자 상품이 적절한지 평가해야 합니다.
단, 성과를 평가할 때 단기적인 성과가 아닌 장기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단기적으로는 얼마든지 운에 의해 영향을 받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운만으로는 좋은 성과를 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또한 개별 상품의 수익률에만 집착하기보다는 전체 포트폴리오의 성과를 평가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수익 실현과 주기적인 리밸런싱(rebalancing)도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위해 신경 쓸 부분입니다. 리밸런싱이란 포트폴리오 안에 있는 자산의 비중을 조정하는 것으로, 자산의 가치가 오르면 일부 수익을 실현하고, 하락한 자산은 낮은 가격에 매입해 자산 배분 전략에 맞게 포트폴리오를 관리하는 전략을 말합니다.
수익 발생 계좌가 리밸런싱을 실행하면 자동으로 수익 실현을 하게 되는데, 이때 퇴직연금 계좌는 수익 실현에 따른 과세가 연금 지급 시점 이후로 이연돼 수익 전체가 재투자되기 때문에 복리 효과도 덤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